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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만에 지킨 약속...올림픽 태극마크의 꿈

기사승인 [873호] 2016.06.24  10: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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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우올림픽 특집 ②] 여자 -67kg급 오혜리

지난 20일, 웨이트장에서 어깨위에 놓인 바벨을 들어 올리는 오혜리(춘천시청, 29)의 얼굴에서 굵은 땀이 뚝뚝 떨어진다.

입에서는 단내가 나고, 연신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고통스런 신음이 터져 나오지만 굽힌 다리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

리우올림픽 자동출전이 확정된 후 계속된 강행군, 지난 13일 파리 전지훈련에서 돌아와 제대로 쉬지도 못했지만 체육과학연구원의 골든 프로젝트 효과가 확실히 몸에 느껴진다.

베이징올림픽 국가대표 파트너로 처음 태릉에 입촌. 결국 8년 만에 스스로에게 다짐한 약속을 지켰다. 올림픽 국가대표의 꿈은 이제 현실이 되었다.

리우올림픽 팔각코트에 서기까지 앞으로 두 달...오혜리의 질주는 지금부터 다시 시작이다.

-------------------------------------------------------편집자주

8년 만에 지킨 약속...‘KOREA'를 등에 새기다

“꼭 언니가 금메달 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저도 옆에서 많이 배워서 다음 올림픽엔 나갈 수 있도록 해야죠.” 오혜리는 밝은 표정으로 2012년 런던올림픽을 기약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국가대표 미디어 데이 인터뷰 내용 중-

오혜리.

오혜리는 8년 전 처음으로 태릉선수촌에 입촌했다. 베이징올림픽 최종평가전서 1승 1패로 2위, 태극마크는 한국체대 선배 황경선의 몫이었다.

파트너로 입촌한 오혜리의 도복에는 'KOREA'가 새겨져 있지 않았다. 민무늬 도복을 입고 함께 파트너로 입촌한 동갑내기 남진아(고양시청)와 함께 2012년 런던올림픽을 기약했다.

4년 후,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다. 런던올림픽 국가대표의 꿈은 결국 부상이 가로막았다. 그리고 다시 4뒤...2015년 첼랴빈스크 세계선수권서 1위를 하며 자동출전권 레이스에 탄력을 받은 오혜리는 뒤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직진, 멕시코시티 그랑프리파이널서 결국 리우올림픽 자동출전권을 손에 넣었다.

“베이징올림픽 파트너로 함께 입촌했던 진아가 ‘8년이 지나 결국 네가 해냈구나’라고 말하는데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꼭 올림픽 국가대표로 태릉에 다시 들어오겠다는 스스로의 약속을 8년 만에 지켰다. 소름이 끼쳤다”

“나를 2인자라고 부르는지도 몰랐다”

지난해 첼랴빈스크 세계선수권 여자 -73kg급 금메달을 차지하면서 오혜리에게 따라붙던 ‘2인자’, ‘국내용’이라는 꼬리표가 떨어졌다.

2015년 첼랴빈스크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기뻐하는 오혜리(오른쪽)와 장정은 코치.

관동중학교, 강원체고를 거치며 일찌감치 대어로 주목받은 오혜리. 그러나 2008년 베이징올림픽 최종 평가전 2위, 2011 세계선수권서는 여자 -73kg급 결승전서 프랑스의 글래디스 에팡을 맞아 연장전서 석패하며 은메달에 머물렀다.

이어 2012년 런던올림픽에 도전했지만 부상으로, 그리고 2013년 푸에블라 세계선수권은 최종선발전 1위로 입촌했지만 평가전서 부상으로 또 다시 무릎을 꿇고 말았다.

“원래 경기에서 잘 다치지 않는데 이상하게 꼭 중요한 때에 다쳤다. 긴장을 많이 했는지, 욕심이 앞서 운동량을 늘인 것이 문제였는지, 의욕이 앞서다 보니 부상을 간과한 것인지...솔직히 지난해 세계선수권서 금메달을 따고 나서 내가 그동안 ‘2인자’라는 평가를 받아왔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더 이상 지고 싶지 않다. 요새도 자다가 경기에서 지는 생각만 하면 벌떡 벌떡 일어난다.”

돌이켜 보면 오혜리는 2011년 경주 세계선수권서 은메달을 땄지만 2013년을 징검다리로 2015년 세계선수권서는 결국 정상에 섰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최종평가전서도 2등을 하고 런던올림픽은 부상으로 출전 기회를 놓쳤지만 2016년 리우올림픽 자동출전권을 획득하며 결국 다시는 오지 않을 올림픽 무대 도전장을 손에 넣었다.

여자 -67kg급 ‘원 톱(One Top)’은 없다...긴장을 집중력으로

여자 -67kg급은 런던 올림픽 이후 절대 강자의 등장이 없었다.

이 체급을 대표하는 프랑스의 아비 나이레, 러시아의 아나스타샤 바리시니코바, 터키의 타타르 누르, 스웨덴의 엘린 요한슨, 대만의 치아 치아 추앙이 오혜리와 함께 리우올림픽 금메달을 놓고 다투는 주요 선수들이다.

2015년 모스크바 그랑프리시리즈 경기 장면.

특징은 이들 중 누구도 절대 우세를 확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2013 푸에블라 세계선수권부터 2015 멕시코시티 그랑프리파이널까지 매번 한 끗 차이로 승부가 갈려 리우올림픽 우승 0순위를 꼽기 가장 난해한 체급 중 하나라는 점이다.

그랑프리와 첼랴빈스크 세계선수권을 통틀어 엘린 요한슨이 치아 치아 추앙을 상대로 2승, 아비 나이레가 아나스타샤 바리시니코바 상대로 2승을 거두고 있는 반면 그 외의 경우 대부분 승패의 우열을 가리기 힘든 전적을 주고받은 상황이다.

더욱이 이 선수들 중의 대결에서 단 한 번의 점수차승도 존재하지 않고, 상당수의 경기가 1점차 혹은 골든포인트 승부로 갈려 리우올림픽 태권도경기 당일 컨디션과 부상이 주인없는 왕관을 차지하는 가장 큰 변수다.

이중 오혜리가 가장 까다롭게 생각하는 경쟁자는 아비 나이레. 리우올림픽 결승 팔각코트서 아비 나이레와 후회 없는 한판 승부를 벼르고 있다.

이미 한 체급 위인 -73kg급서 세계를 제패하고, 여자 +67kg급 올림픽 랭킹 1위 중국의 쳉 슈인도 꺾은 바 있는 만큼 일반호구 시절부터 갈고 닦은 기본기만 집중력 있게 구현해낸다면 충분한 승산을 갖고 있다. 

특히, 오혜리가 주의해야 할 점은 지나친 긴장과 심적 부담. 이를 극복하기 위해 꾸준한 심리 트레이징과 리드를 내준 상황을 상정한 훈련 프로그램으로 오는 8월을 대비하고 있다.

그때는 몰랐고 지금은 아는 것들...

강원도 강릉 출신인 오혜리의 가족은 어머니 심은자씨(56), 언니 오명성씨(32), 여동생 오세은씨(23)다.

오혜리(왼쪽)와 어머니 심은자 씨.

아버지 故 오동배 씨는 오혜리가 초등학교 4학년 때 간암으로 돌아가셨다. 대형차를 수리하는 카센터 직원이었던 무뚝뚝한, 그리고 늘 트레이닝복을 입고 다녔던 아버지.

“씨름 선수를 하고 싶었지만 형편이 어려워 포기했던 아빠...내가 태권도가 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 ‘네가 좋아하는 것 하라’며 말없이 응원해 주시던 아빠. 내가 이렇게 올림픽 국가대표가 되어서 태극마크 새겨진 트레이닝복이라도 선물했으면 무뚝뚝한 우리 아빠 마음이 어땠을까...겉으로 티는 안내셔도 얼마나 좋아하셨을까”라며 아버지를 기억하는 오혜리.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세 자매의 뒷바라지는 온전히 어머니의 몫이었다. 중학교 시절 팀이 창단되면서 강원체고, 한국체대, 그리고 서울시청과 춘천시청을 거치며 오혜리는 일찍 강릉을 떠났고, 지금은 언니와 여동생도 서울로 직장을 발령받아 어머니 혼자 강릉에 살고 있다.

“솔직히 나는 우리 엄마가 갱년기를 어떻게 넘겼는지도 잘 모르는 딸이었다. 그런데 언니가 서울로 발령을 받으면서 엄마가 많이 힘들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어가면서 엄마가 얼마나 강한 사람인지 이제 알게 되었다. 그때는 몰랐다. 누구나 가족보다 친구가 좋은 때가 있고 나 역시 그랬다. 그러나 지금은 안다. 내 가장 큰 버팀목이 결국은 가족이라는 것을.”

혜리의 전성시대 “이제 다시 시작”

오는 8월 19일(현지시각) 리우올림픽 결전장만을 남겨놓은 오혜리는 이제 대회를 50여 일 앞두고 리셋에 들어갔다.

프랑스 전지훈련 중 점점 다가오는 올림픽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긴장감에 눌려 눈물까지 흘렸지만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올림픽을 앞두고 골든프로젝트에 땀 흘리고 있는 오혜리.

2인자에서 이제 1인자로, 이기고, 지며, 또 이런 저런 상황들에 처하면서 여기까지 버티고 온 모든 것이 결국 올림픽을 향한 과정이기 때문에 약해질 수 없다.

“나이가 어렸으면 그냥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을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외박 안나가도 좋으니까 지금 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하고 싶다. 어차피 나에게 이번 올림픽은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2등은 하고 싶지 않다. 다만 국민들께서 ‘태권도 재미없다’ 하지 마시고, 선수들이 저 발 하나를 차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따뜻한 마음으로 응원해 주셨으면 한다. 올림픽까지 조금은 늦게 왔지만 이제 남은 두 달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나아가겠다.” 

기사를 마치며...

8년 전 올림픽 파트너에서 지금은 자신이 주인공이 된 오혜리는 함께 입촌해 있는 후배들이 가장 마음에 걸린다.

주변에서는 큰 경기 앞두고 이기적이 되어야 한다는 말들도 자주 하는데 그러다보니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후배들과 저녁에 나가서 밥이라도 같이 먹고 싶은데 지금 여유가 너무 없다보니 내가 잘 하고 있는 건지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이러다 나중에 올림픽이 끝난 후 지금의 이 시간을 후회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지금 행복하지 않으면 금메달을 따도 행복하지 않을 것 같아서...”

오혜리의 고민을 들으면서 쉽사리 어떠한 말도 건넬 수 없었다.

다만 2인자의 마음을 아는 오혜리, 돌고 돌아 조금은 늦게 왔지만 결국 8년 만에 약속을 지킨 오혜리의 마음을 파트너도, 후배들도 알지 않을까 하는 위로를 건넬 수 밖에...

양택진 기자 winset75@naver.com

<저작권자 © 태권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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