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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행정(行政)과 온정(溫情) 사이

기사승인 [0호] 2019.09.20  10: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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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위면직자 등 인사규정 두고도 공직자 아니라고 빠져나가

‘쪽지 오더’ 사건으로 물의를 빚어 1심에서 업무방해로 벌금 800만 원을 받은 유은주 차장에게 대한태권도협회(KTA) 인사위원회가 재심을 통해 해임에서 정직 3개월로 징계를 감경했다.

인사위원회와 사무처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인사규정 해석에 대한 논란과 팔이 안으로 굽은 내부 비호 온정주의라는 비판이 적지 않다.

지난 9일 KTA가 인사위원회를 개최, 재심을 신청한 유 차장에게 정직 3개월을 내렸다.

해임과 파면, 그리고 정직은 모두 중징계다. 그러나 정직은 수당을 제외한 본봉을 수령한 후 다시 KTA로 복귀한다. 단, 일정기간 동안 승진 등에 불이익을 받는다.

앞서 올해 1월 국가대표 강화훈련단 지도자 선발 과정에서 일부 경기력향상위원회 위원들을 대상으로 사전에 정해진 ‘쪽지 오더’ 사건이 불거지면서 이상헌 전 처장은 1심에서 실형 10개월, 유 차장은 벌금 800만 원을 선고받았다.

이와 관련 대한체육회는 올해 태권도 국가대표 강화훈련단의 진천선수촌 조건부 입촌 승인 결정을 내렸다.

더불어 ‘쪽지 오더’ 관련자들에 대한 징계, 경기력향상위원회 재구성과 강화훈련단 지도자 재선발의 후속 조치를 요구하며 KTA에 대한 행정보조비 중단 예정, 국가대표 지도자들에 대한 인건비 중단 예정, 그리고 선수촌 입촌 승인을 한 차례 보류하는 등 압박을 거듭했다.

KTA는 이 전 처장에 대해 직위해제 처분을 내렸지만 업무방해로 함께 기소된 유 차장에게는 아무런 조치도 내리지 않아 빈축을 샀다.

결국 지난 8월 12일 동부지방법원에서 두 사람에 대해 실형 10개월과 벌금 800만 원의 선고가 내려졌고, KTA는 같은 달 19일 인사회위원회를 개최해 이 전 처장에 대해서는 파면, 그리고 유 차장에 대해서는 해임 처분을 내렸다.

이 전 차장은 재심을 신청했다가 취소, 다시 재심을 신청하는 과정에서 기일을 넘겨 각하되었고, 유 차장의 경우 재심이 이루어졌다.

인사위원회는 유 차장에 대해 당초 해임에서 정직 3개월로 징계를 감경했다.

임신자 인사위원장은 “이상헌 처장이 책임을 다 짊어지고 가는 상황이다 보니 그렇기도 하고,  유 차장이 재심에서 본인의 방어권을 자료와 함께 충분히 활용했다. 법률적인 조언과 검토도 있었다. 지난 인사위원회 해임 처분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위원들과 충분히 회의를 거쳐 결정한 것이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인사위원회 재심과 관련해 인사규정에 대한 해석이 논란이다.

KTA 측은 당초 업무상 횡령이나 배임이 아닌 다른 비리 혐의로 인해 직원이 벌금형을 받을 경우 이에 대한 징계양정규정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확인 결과 KTA는 대한체육회 인사규정 중 임용의 결격사유에 포함되어 있는 “‘부패 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의 설치 운영에 관한 법률’ 제82조에 따른 비위면직자 등의 취업제한 사유에 해당하는 사람”을 인사규정에 담고 있었다.

해당 법률 제82조(비위면직자 등의 취업제한) 1항 2호는 “공직자였던 자가 재직 중 직무와 관련된 부패행위로 벌금 300만 원 이상의 형의 선고를 받은 자”를 명시하고 있고, 대한체육회와 KTA 모두 인사규정에 여기에 해당하는 경우를 임용의 결격사유로 정해놓고 있다

즉, 여기에 해당한다면 임용의 결격사유에 속하고, 당연퇴직의 대상이 된다. 임용은 신규 취업을 포함해, 승진임용, 전직, 전보, 파견, 강임, 휴직, 직위해제, 정직, 강등, 복직, 면직, 해임 및 파면을 말한다.

이에 대해 KTA는 해당 법률 제82조 1항 2호의 내용 중 ‘공직자’라고 지칭된 부분을 들어 사무처 직원은 공직자가 아니기 때문에 여기에 적용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러한 판단은 변호사의 법률적 검토를 거친 내용이라고도 전했다.

그러나 공직자가 아니라는 주장을 하려면 애초에 KTA가 이 규정을 인사규정에 포함시키면 안될 일이었다.

대한체육회 담당부서는 “대한체육회의 경우 기타 공공기관으로서 이 규정을 적용하고, 산하 체육회나 회원종목단체의 경우 이 규정을 업데이트 한 곳도 있고, 하지 않은 곳도 있다. 어느 정도 각 단체의 자율성은 있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따라서 KTA가 인사권의 자율성을 발휘해 내부 인사규정에 이를 처음부터 포함시키지 않았다면 비위면직자 규정을 적용해야할 강제적 의무는 없다.

그러나 이미 이 규정을 인사규정에 포함시켜놓고도 ‘공직자’라는 단어를 들어 피해나가는 것은 사무국 직원을 비호하기 위한 온정주의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이 부분은 공무원법 33조와 관련해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예를 들어 국기원 정관 11조(임원의 결격사유)는 국가공무원법 제33조 각 호의 1에 해당하는 자를 적시하고 있다.

국기원 임원은 공무원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규정을 정관에 명시한 것은 국기원 임원의 경우 공무원이 적용받는 결격사유를 적용하겠다는 뜻이다.

또 다른 문제도 있다. 직원에 대한 징계 규정은 형의 확정을 전제로 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1심의 결과만으로 징계를 할 수도, 혹은 최종심까지의 확정판결을 받은 후에 징계를 할 수도 있다.

다만 KTA ‘쪽지 오더’ 사건은 그 사회적 파장이 컸고, 중대한 경우에 해당돼 대한체육회가 이에 대한 조치를 압박해오자 1심 판결을 근거로 인사위원회가 징계를 결정한 것이다.

1심 판결을 근거로 인사위원회에서 파면과 해임을 받았다 하더라도 당연히 당사자들이 최종심에서 파면이나 해임의 결정을 뒤집을 만한 수준의 확정판결을 받는다면 지방노동위원회, 중앙노동위원회, 행정소송 등을 통해 복직구제 신청을 할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이와 유사한 사례는 이미 국기원에서 벌어진 바 있다. 업무방해로 벌금 400만 원을 받은 직원이 첫 번째 인사위원회에서는 가벼운 징계를, 같은 사안으로 법원의 동일한 판결 후 해고 처분을 받았다가 결국 소송을 통해 복직 판정을 받은 사례가 있다.

당시 법원이 복직 판정을 내린 결정적 사유는 이중징계였다. 즉, 같은 사안으로 이미 가벼운 징계를 한 차례 받았는데 확정판결 후 다시 인사위원회에서 해고 처분을 내려 이중징계를 했다는 점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졌다

‘쪽지 오더’ 사건과 관련해 항소심 및 대법원 결과에 따라 정직 3개월의 처분이 당연퇴직이나 파면, 혹은 해임으로 바뀐다면 이중징계 논란이 재연된다.

사실상 이번 징계 감경은 인사규정의 적용 문제가 본질이 아니다. KTA의 설명대로 ‘공직자’가  아니기 때문에 이를 적용할 수 없다는 설명은 취지를 배제한 채 문장 그대로 수용하면 가능한 해석이기도 하다.

그러나 ‘쪽지 오더’ 사건이 던진 파장과 그 이후 벌어진 사태들에 비추어 이번 징계감경은 KTA 인사위원회를 포함해 KTA 사무국과 집행부의 조직이기주의와 내부 비호가 빚어낸 온정주의라는 비판을 피할 수는 없을 전망이다.

특히 첫 인사위원회에서 온정주의에 빠지지 않기 위해 기계적 판단에 따라 해임을 결정했다가 재심에서 이를 포기했다는 점은 그사이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태권도를 국기로 삼고 있는 모국의 국가대표 강화훈련단 지도자 선발 과정에서 벌어진 ‘쪽지 오더’ 사건. 이로 인해 태권도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었고, 경향위 위원들은 ‘대승적 결단’을 명분으로 사퇴했으며, 강화훈련단 지도자들은 명예에 금이 가고 자존심에 상처가 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TA는 바른 행정이 아닌 스스로를 비호하는 그릇된 온정을 선택했다.

양택진 기자 winset75@naver.com

<저작권자 © 태권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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