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2cm 단신 극복하고 ‘싸움의 기술’로 세계 정상 차지
‘톨(Tall)’권도.
전자호구 등장 이후 스텝과 기술이 아닌 키가 크고, 다리가 긴 선수가 스포츠 태권도에서 유리하다는 시각을 자조하며 생겨난 웃픈 신조어다. 국제대회에 취재를 가면 종종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체급경기로 치러지는 상당수의 종목에서 키 큰 선수가 유리하다. 태권도는 전자호구 등장 이후 같은 체급에서 키가 크고, 다리가 긴 선수가 유리한 경향성이 유독 강해졌다.
그러나 싸움의 기술은 신체조건이 불리한 선수가 큰 선수를 상대해 승리할 때 빛을 발한다.
그리고, 한국의 ‘다윗’ 배준서(강화군청)가 맨체스터세계선수권서 스포츠 태권도를 통해 그것을 증명했다.
2019 맨체스터세계선수권서 172cm의 단신으로 ‘톨(Tall)’권도를 무너뜨리고 우승을 차지한 배준서(왼쪽). |
신장 172cm의 배준서는 단신의 열세를 체력과 기술로 극복하며 태권도 세계 최정상에 올랐다. 남자 –54kg급서 예선부터 결승까지 여섯 번의 경기에서 총 256점의 폭발적인 득점을 뽑아냈다.
결승전서는 2018 유스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출신인 신장 184cm 러시아의 기오르기 포포프(Georgy POPOV)를 상대로 53대 24의 큰 승리를 거두었다.
3회전 경기 종료 직전 감점이 9개까지 쌓이며 감점패의 위기에 놓였지만 마지막까지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자신이 유리한 유효거리를 확보하기 위해 거침없이 상대의 품으로 뛰어들어 난타를 감행하는 배준서의 경기력은 말 그대로 ‘톨(Tall)’권도를 무너뜨린 인상적인 모습이었다.
2016 버나비세계선수권 우승자이자 2017 아티라우아시아청소년선수권서 연거푸 우승을 차지한 배준서.
초등학교 2학년 때 태권도에 입문, 강화중학교와 강화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이 아닌 강화군청으로 바로 입단, 그동안 고등학교 졸한 후 바로 실업팀으로 입단한 다른 유망주들이 빛을 발하지 못한 것과도 크게 대조되는 모습을 보였다.
여기에 세계대회 4회 우승에 빛나는 최연호의 뒤를 이어 10여 년 만에 단신을 극복하고 남자 최경량급 우승을 차지하는 의미를 더했다.
배준서(왼쪽)의 진천선수촌 훈련 장면. |
그러나 아쉽게도 배준서는 당장 오는 6월 로마에서 열리는 그랑프리시리즈에 출전할 가능성이 제로에 가깝다.
올림픽 체급으로 치러지는 그랑프리시리즈의 경우 이미 김태훈과 장준이 올림픽랭킹 5위 이내에서 둥지를 틀고 있고, 한 국가에서 2명밖에 출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톨(Tall)’권도를 무너뜨린 ‘작은 고추’ 배준서의 도전은 어디에서든 멈추지 않을 것이다.
양택진 기자 winset7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