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장에서 제도권까지 파장 적지 않아...적폐 심사 개선 가능?
일선 도장에서부터 제도권까지 강타할 심사제도 개선 방안이 태권도계 내부에서 끌려 나와 공론장에 세워졌다.
지난해 100대 국정과제로 선정된 ‘태권도 문화콘텐츠화’ 추진 정책인 ‘태권도 미래 발전전략과 정책과제(부재: 태권도 10대 문화콘텐츠 추진방안)’가 발표되면서 당초 정책과제에서 제외되었던 심사제도 개선이 ‘자랑스러운 태권도’라는 추진전략 내에 포함, 심사제도 개혁을 겨눈 본격적인 수술의 신호탄이 될지 비상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지난 15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태권도의 미래 발전 전략과 정책과제' 보고회 장면. |
지난 15일 오전 10시, 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태권도 미래 발전전략과 정책과제 추진방안 보고회’가 개최되었다.
눈길을 끄는 부분은 세 번째 추진전략인 ‘자랑스러운 태권도’의 세부 핵심 정책과제로 설정된 ‘태권도 심사 및 단증발급 체계 개선’.
이날 발표된 ‘태권도 심사 및 단증발급 체계 개선’은 기존 심사제도에 비춰 파격에 가깝다.
주요 내용으로 정부는 심사비에 대한 전면 공개를 추진하고, 합리적인 심사비 책정기준을 마련할 예정이다.
또한 4품·단 전환 때 실시하는 보수교육을 모든 품·단 전환에 대해 확대 의무화하며, 품·단이 올라갈수록 다면 심층심사(인성, 실기, 면접)를 도입하고, 초단시간 집단심사 개선을 위해 1-2품·단 심사의 도장 위탁방안 연구를 추진할 계획이다.
17개 시도협회 지역 심사에서 타 지역 심사위원 파견을 의무화하는 내용도 포함되었다.
도장제도 개선 방향으로는 등록도장 등록비 인하 및 지역별 동일한 기준 적용, 17개 시도협회 해당 지역으로 제한된 심사규정 철폐, 타 지역 심사참여 자유화, 미등록 도장 승품·단 심사 참여기회 확대도 제시되었다.
해외의 경우 개인사범이 보유하고 있는 심사추천권에 대해 점진적으로 환수, 심사 관리역량이 검증된 해당 국가협회로 일원화를 추진하고, 이에 따라 해외 심사비 수급체계 역시 국내와 동일하게 해외 국가협회, 대륙연맹, 세계태권도연맹, 그리고 국기원 순으로 동일하게 적용한다.
그리고, 태권도 단체 및 전문가로 ‘심사·단증체계 개선 TF’를 구성해 세부방안 수립 및 적용방법을 논의토록 하고 있다.
이 내용들의 실현 여부와 시기를 가늠하기는 어렵지만 내용은 분명히 파격적이다.
이 내용이 공표된 후 태권도계에서 종사하는 이들은 “결국 올 것이 왔다. 태권도계 내부의 자정 노력이 현실화되지 못한 것이 아쉽다”, “태권도계 제도권 구조에 큰 변화가 수반될 수밖에 없는 내용이다”라는 목소리가 퍼지기 시작했다.
태권도 심사제도 및 단증 발급 체계 개선 정책 과제. |
우선 1-2품·단 심사의 도장 위탁방안 연구와 등록비 인하, 타 지역 심사참여 자유화는 국내 태권도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는 시도협회의 예산과 권력 구조에 엄청난 파장을 주게 된다.
시도협회 예산의 종잣돈은 심사비이다.
지역 내 도장 숫자와 수련생 숫자에 따라 수십 억 원에서 수 억 원에 이르는 시도협회 예산의 주수입원인 심사비 중에서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1품·단 심사비이다. 90% 이상이다.
따라서 각 일선 도장에서 1품·단 심사를 직접 시행한다면 심사비 구조가 큰 폭으로 바뀌는 것을 상정해야 한다.
일선 도장이 직접 1품·단 심사를 치르고, 이에 대한 행정비용 등을 국기원과 직접 거래하게 될 경우 시도협회와 시군지부, 그리고 대한태권도협회가 그동안 납부 받던 심사비는 큰 폭에서 그 양과 질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직접비, 간접비 등으로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는 현재의 심사비 구조는 꼼꼼히 따져보면 비합리적인 항목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 이렇게 쌓인 심사비는 몇몇 메머드급 시도협회의 기득권 유지에 사용되어 왔고, 지속적으로 잡음이 있었다.
따라서 이번 개선방안은 도장에서부터 국기원까지 이익 공유 구조의 속살을 드러내는 과정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고, 기득권과 예산 구조를 유지하던 제도권은 기로에 서게 된다.
문체부와 4개 단체가 마련한 심사제도 및 단증 체계 개선 추진 정책을 당장 도입하는 것에 무리가 있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일선 도장이 1-2품·단 심사를 직접 볼 경우 이를 관리 감독할 인력의 자질과 수급 문제 가 뒤따르고, 국내 도장 현실에 비추어 공개 승급 심사와 같은 이벤트성 행사로 치러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 상당수 태권도장들이 자체 승품·단 심사를 볼 정도로 자격을 갖추 전문 지도자들을 갖추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한 관장은 “보통 도장에서 사범들이 4단이 미만인 경우가 많다. 2단이나 3단이 수련생들을 지도한다. 영세한 도장에서 인건비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사범 연수나 생활체육지도자 자격증을 갖춘 지도자들을 채용하기 어렵다. 또 막 대학을 졸업한 사범들이 도장을 차릴 경우 사범 자격증이 있다고 해도 과연 1·2품단 승단심사를 봐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국기원이나 대한태권도협회에서 모든 도장의 승품·단 심사에 자격을 갖춘 감독관이이나 평가위원을 보낼 수 있을 리도 만무하고, 자칫 공개 승급심사 수준의 이벤트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이를 보완할 장치 없이 이 제도를 도입한다면 득보다 실이 클 수도 있다. 현재의 집단심사가 문제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많은 준비가 필요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국기원 심사 장면. |
시도협회 입장에서도 반대할 가능성이 높다.
심사구조를 조금이라도 안다면 이 같은 변화가 시도협회 예산과 기득권에 어떠한 영향을 줄지는 불 보듯 뻔하게 알 수 있다.
기존 심사 제도가 더 이상 미룰 없는 적폐를 안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따라서 더 큰 부작용을 막기 위한 보완 및 강화된 대책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양택진 기자 winset7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