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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좀 한 혜진 씨’ 미국 변호사를 꿈꾸다

기사승인 [0호] 2017.11.29  10:5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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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체고 태권도 선수에서 국내 유일 미국 로스쿨 합격
“노숙자와 난민, 사회적 약자 도우려 이 길 선택했다”

“운동선수가 새로운 분야에 도전한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특별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새로운 목표나 과정에서 나는 늘 바닥에서 도전했고, 다시 처음이라는 생각으로 도전할 것이다.”

노숙자와 난민, 사회적 약자 도우려 로스쿨을 선택한 '운동 좀 한 혜진 씨'.

 

많은 선수들이 중도에 운동을 그만둔다. 사정은 저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부상으로, 다른 누군가는 박수를 받으며 은퇴한다. 어느 쪽이건 새로운 삶에 대한 선택은 불안하다.

체육고등학교 태권도부 선수 출신으로 국내 유일의 미국 로스쿨인 한동대학교 국제법률대학원에 합격, 미국 변호사에 도전하는 ‘운동 좀 한 여자’가 있다.

미국 변호사 시험 합격률 70%를 자랑하는 한동대 로스쿨에 합격한 스물네 살 최혜진 씨.

“노숙자나 난민처럼 작은 도움을 받지 못해 자신의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하는 사람들을 법으로 돕기 위해 로스쿨에 도전했다”는 그는 어떻게 이런 꿈을 꾸게 되었을까?

그는 겨루기 선수였다. 초등학교 때 출전한 첫 전국대회에서 금메달을 땄고, 봉의여중 태권도부 주장도 맡았다.

강원체고에 진학한 혜진 씨는 2학년 때 우수선수선발대회에서 무릎 전방십자인대와 연골을 크게 다쳤다. 더 이상 운동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다.

“중학교 3학년 때 깊은 슬럼프가 찾아왔다. 고등학교 1학년 때는 가출해 서울로 도망쳤다. 그 당시에도 다른 길에 대한 막연한 꿈은 있었다. 그 막연했던 꿈은 무릎을 다친 후 더 구체적으로 와 닿았다.”

그 꿈은 스포츠 외교 전문가였다.

꿈은 구체화되었지만 그 꿈을 이루기 위한 과정은 막막하기만 했다. 홀로 도서관을 전전하며 공부를 시작했고, 스포츠 외교 전문가가 되기 위한 과정을 하나하나 밟아나가기 시작했다.

담임은 물론 주변의 만류가 많았다. 그러나 그는 결국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스포츠레저학과에 체육고등학교 출신 최초로 합격했다.

의욕과 달리 혜진 씨의 성적은 최하위였다. 첫 강의 때는 학생들이 커리큘럼을 돌려 읽는데 테크닉(technic)을 테치닉으로 읽었다. 단어도 모르는 상태에서 원어 강의를 수강했다. 복수전공으로 선택한 정치외교학과 수업도 원서가 대부분이었고, 영어로 퀴즈를 풀었다.

첫 토익 점수는 남자 신발사이즈인 285점이었고, 동기들이 30분 공부할 때 5시간 넘게 공부해도 따라갈 수 없었다.

“죽어라 공부만 했다. 나의 꿈을 잊을 만큼 학업 성적이 너무 떨어졌다. 아무리 노력해도 원어 강의는 B학점 이상 나오지 않았다. 무조건 실력으로 따라잡아야 했다.”

"운동선수가 새로운 분야에 도전한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특별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1년이 지난 후 최상위 장학금을 받을 만큼 동기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고, 혜진 씨는 스포츠 외교 전문가가 되기 위한 본격적인 과정을 밟아 나갔다.

그 첫 시작으로 세계태권도평화봉사단에 지원해 세네갈로 향했다. 국제청소년교류네트워크 청소년 대표로 일본청소년대표단과 동행하며 친구가 되었다.

또한 이화여대에 교환학생으로 가 모든 과목에서 A+를 받았다.

그 이듬해 다시 태권도평화봉사단으로 스웨덴과 핀란드, 그리고 덴마크로 파견돼 봉사활동을 벌였다.

2015년 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에서는 통역과 모잠비크 대표단을 맡았으며, 춘천오픈국제태권도대회 의전과 통역 활동도 했다.

세계태권도연맹(WT)의 태권도박애재단 설립은 혜진 씨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처음 WT가 태권도박애재단을 설립하고 난민캠프를 지원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저 일회성 행사라고 생각했다. 그때는 정보도 자세히 알 수 없었다. 그런데 계속 지켜보니 이 일이 WT가 굉장히 중점적으로 하는 활동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했던 태권도가 정말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태권도를 통해서도 사회적으로 소외된 약자들을 위해 살 수 있는 그런 가능성을 발견했다.”

2014년 태권도평화봉사단으로 세네갈로 파견되어 어린 수련생들과 함께 지내는 장면.

혜진 씨가 미국 변호사 시험으로 눈을 돌린 것은 4학년 때 겪은 특별한 경험 때문이었다.

선교활동으로 미국 조지아주 애틀란타로 향한 그는 다양한 인종과 민족의 노숙자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이 무얼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을 돕기 위해 미국 변호사 시험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사실 혜진 씨에게는 다른 기회도 있었다. 단 두 명만 뽑는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워싱턴 무역관 인턴으로 선발되어 6개월 간 현지에서 마케팅 업무와 조사업무를 담당했고, 공채 시험에 응해보라는 권유도 있었다.

그러나 마음을 굳힌 그는 대학을 졸업한 후 다시 미국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노숙자들과 재회해 자신이 가려고 하는 길을 확인했다.

미국 애틀란타에서 노숙자들을 위한 선교 봉사 활동을 하는 장면.

혜진 씨는 지난 21일 한동대 국제법률대학원에 합격했다.

“처음에는 스포츠 외교뿐만 아니라 선수들의 인권과 스포츠계 불의에 맞서기 위해 한국에서 변호사에 도전하려고 했다. 그래서 고시반에도 들어갔다. 그러나 미국에서 노숙자들과 함께  지내며 목표가 바뀌었다. 난민이나 노숙자들, 사회적 약자들이 법의 작은 도움을 받지 못해 자기 삶을 제대로 살아가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을 위해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이때가 가장 행복했다.”

*한동대학교 국제법률대학원: 2002년 설립되었으며, 국내 유일 미국식 로스쿨 교육과정(3년)을 그대로 하고 있다. 13명의 미국인 변호사가 교수를 맡고 있으며, 2004년 12월 첫 졸업생 배출 이후 70%가 넘는 미국 변호사 시험 합격률을 보이고 있다.

양택진 기자 winset75@naver.com

<저작권자 © 태권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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