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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스포츠계의 거목 김운용 전 IOC 부위원장 타계

기사승인 [0호] 2017.10.03  11:4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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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권도 올림픽 정식종목 채택의 주역...한국 스포츠 위상 높여

김운용 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부위원장이 향년 86세를 일기로 3일 오전 2시 21분 타계했다.

타계 하루 전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한 후 유명을 달리한 김 전 부위원장의 빈소는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될 것으로 알려졌으며, 추석 명절을 감안해 조문은 5일부터 받는 것으로 논의 중이다.

세계태권도연맹(WT) 창설 총재이자 국기원 초대 원장, 그리고 대한태권도협회(KTA) 회장을 지낸 김운용 전 부위원장의 장례식은 태권도장으로 치를 것으로 전해졌다.

태권도 올림픽 정식종목 채택의 주역이자 한국 스포츠를 대표한 김운용 전 IOC 부위원장이 향년 86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김 전 부위원장은 1931년 3월 19일 생으로 연희대학교(현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재학 중 6.25 전쟁이 발발한 후 미국 육군보병학교로 세 차례 군사유학을 다녀왔으며 외국어에 능통해 제11대 육군참모총장 송요찬 중장의 전속부관을 맡은 바 있다.

박정희 정권 당시 외교관으로 활동하다 태권도계 대부 최홍희씨가 해외망명 후 1971년 1월 제7대 대한태권도협회장에 취임하며 태권도계에 입성했다.

이후 1972년 국기원을 설립, 1973년에는 최홍희씨의 국제태권도연맹(ITF)을 대항하는 WT를 창설해 초대 총재에 올라 전세계적으로 태권도를 보급하면서 국제 스포츠계에 명성을 쌓았다.

1986년에는 박종규 IOC 위원의 뒤를 이어 IOC 위원이 되었으며, 1988년 서울올림픽 성공적 개최에 힘입어 1992년 IOC 부위원장에 올랐다.

이어 대한체육회장 겸 대한올림픽위원장에 오르면서 한국 체육계를 대표했다.

특히, 1988년 서울올림픽 태권도 시범종목에 이어 1994년 9월 4일 파리 제103차 IOC 총회에서 태권도를 2000년 시드니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도록 결정적 역할을 했다.

자타공인 태권도 올림픽 정식종목 채택이라는 역사적 쾌거는 김 전 부위원장의 오랜 노력과 스포츠 외교 능력의 결실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더불어 유창한 외국어 실력에 특유의 친화력으로 한국의 스포츠 외교 취상을 크게 끌어올리는 성과도 거두었다.

김 전 부위원장은 태권도의 올림픽 정식종목 채택까지 이뤄낸 한국 스포츠 외교 선구자의 길을 걸었지만 2000년 이후 영욕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김 전 부위원장은 안토니오 사마란치 전 IOC 위원장 후임으로 IOC 위원장 선거 출마가 높아지면서 각종 스캔들 의혹이 제기되었고, 2002년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 유치 과정에서 드러난 IOC 집행부의 뇌물 스캔들로 곤경에 처했다.

2001년 IOC 위원장 선거에서 패배한 후에는 2004년 1월 28일 배임수재, 횡령 등 각종 비리 혐의로 검찰에 의해 구속 수감되었다.

이후 강연과 기고 등을 통해 스포츠계의 거목으로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한국 스포츠의 발전과 태권도 세계화를 위한 그의 공적을 기리는 의미로 오는 10월 28일부터 제1회 ‘김운용컵국제오픈태권도대회’가 창설되었으나 끝내 이를 보지 못하고 타계했다.

양택진 기자 winset75@naver.com

<저작권자 © 태권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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