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우올림픽 특집 ⑤] 남자 –68kg급 이대훈
한국 태권도의 자존심, 종주국 태권도의 아이콘, 꽃미남, 런던에서 놓친 최연소 태권도 그랜드슬램의 꿈, 세계태권도연맹(WTF) ‘올해의 선수’ 2014-2015 연속 수상...
아니다. 오래 보고 자세히 지켜 본 이대훈(한국가스공사, 25)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수식어는 ‘노력’이 빚어낸 천재다. 노력 하나로 천재의 수식어가 따라붙는 태권도 선수.
런던에서 못 이룬 금메달이 목표가 아니다. 리우에서 목표는 역대급 최고의 경기.
오는 18일(현지시각), ‘노력’이 빚어낸 천재 이대훈이 최고의 경기로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리우올림픽 태권도경기 남자 –68kg급 본선 무대에 오른다. ------------편집자주
2012년 런던...핑계도, 이유도 없다. 최선을 다했다.
4년 전, 이대훈은 런던올림픽 결승전서 스페인의 곤잘레스 보닐랴 호엘과 맞서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던 최연소 그랜드슬램을 놓쳤다. 무리한 체중감량과 훈련 중 부러진 코뼈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는 평가가 남았다.
리우올림픽 태권도 남자 -68kg급 국가대표 이대훈(한국가스공사). |
이대훈도 그렇게 생각할까?
“최선을 다했고, 그리고 졌다. 체중 감량 때문도 아니고, 부러진 코뼈 때문도 아니다. 주변에서는 그렇게 말했지만 나는 핑계를 대고 싶지 않았다. 이유도 대고 싶지 않았다. 최선을 다해 준비했고, 최선을 다해 경기를 뛰었고, 곤잘레스에게 졌을 뿐이다. 리우에서도 나는 최선을 다할 것이고, 그래서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하고 있다.”
런던올림픽 이후 이대훈은 2013 푸에블라서 세계선수권 2연패를, 2014년 수조 그랑프리와 맨체스터 그랑프리서 우승을 차지했고, 2015년에는 모스크바 그랑프리 2위, 삼순 그랑프리서 3위, 맨체스터 그랑프리 우승, 그리고 올림픽 자동출전권이 확정되는 멕시코시티 그랑프리파이널까지 우승을 차지하며, 올림픽랭킹 1위로 리우올림픽 자동출전권을 획득했다.
곤잘레스와는 푸에블라 세계선수권 남자 –63kg급 8강전서 야수같은 난타전 끝에 점수차승으로 설욕했고, 그랑프리 대회 올림픽 체급인 남자 –68kg급서도 몇 차례 승패를 주고받았다.
리우올림픽을 향한 전장에서 이대훈은 승패에 상관없이 스스로 진화에 진화를 거듭했고, 이제 최선을 다한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열흘 후 두 번째 올림픽 무대에 오른다.
자만도 없다. 좌절도 없다.
이대훈에게는 가장 기억에 남는 승리도, 가장 기억에 남는 패배도 없다. 수년간 치른 경기 중 가장 극적으로 승패가 갈렸던 몇몇 경기를 언급해봤지만 대답은 같았다.
“어렸을 때 태권왕을 놓치거나 체전 선발전에서 지고 나서 하늘이 무너지는 것처럼 느껴졌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하늘은 무너지지 않았다. 이겼던 기억도, 졌던 기억도 다 추억이 된다. 그 순간에 최선을 다했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최선을 다해 훈련하고, 최선을 다해 경기를 뛰었는데도 졌다면 그건 그 나름대로 추억이 된다. 더 노력해야하는 이유가 되고, 성장의 계기가 된다. 다만 내 추억 속에 최선을 다하지 않은 모습을 남겨두고 싶지 않다. 그래서 아쉬운 경기도, 가장 기뻤던 경기도 없다. 끝나지 않은 내 최선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리우올림픽을 앞둔 이대훈의 태릉선수촌 훈련 장면. |
돌이켜보면 2015년 세계선수권서 이대훈은 PSS 송수신 오류로 8강전서 곤잘레스에게 어이없이 패했다. 대회 3연패를 놓쳤지만 웜업장으로 돌아온 이대훈은 바로 경기를 복기했다.
패배는 중요하지 않았다. 준비한 전략이 과연 성공적이었는지에 대한 평가가 중요했다. 이대훈에게 필요한 건 위로가 아니었다. 냉정한 피드백이었다.
2015년 삼순에서 러시아의 알렉세이 데니센코브에게 준결승서 역전패하고 나서도 웜업장에서 곧바로 만난 이대훈의 얼굴은 밝았다.
“2년 전 첫 그랑프리에서 만났을 때보다 확실히 좋은 경기를 펼쳐서 기쁘다. 오늘은 졌지만 앞으로 무엇을 준비할지 더욱 명확해졌다. 무엇을 준비해 어떻게 이겨야 하는지 알 것 같다.”
어제의 이대훈과 오늘의 이대훈이, 오늘의 이대훈과 내일의 이대훈은 그래서 다르다. 좌절도, 자만도 없다.
생각에는 한계가 없고, 성장에는 끝이 없다.
고3 이대훈이 광저우아시안게임 국가대표 1진으로 처음 태릉선수촌에 입촌한 2010년, 그리고 7년 내리 국가대표 1진이었다.
지도자든, 선수든 태릉에서 이대훈과 함께 지낸 이들이 입을 모아 인정하는 한 가지가 있다.
‘노력.’ 입으로는 가장 쉬운 말이지만, 실천으로 증명하기 가장 어려운 바로 ‘노력’.
이대훈은 매일 매일 정해진 선수촌 훈련 목표량을 거의 유일하게 모두 소화해내는 선수다. 스피드 발차기든, 스파링이든, 저산소 챔버 트레드밀 훈련이든, 웨이트 훈련이든 누구나 한 번쯤은 중간에 포기하지만 이대훈은 마지막까지 포기하는 법이 없다.
“처음에는 이대훈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저 라저스트 전자호구에 특화된 선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선수촌에서 미트를 잡아보고 알았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똑같은 스피드로, 똑같은 힘으로, 똑같은 자세로 모든 훈련을 소화하는 선수는 이대훈이 유일했다. 오죽하면 훈련량으로 이대훈을 한번쯤 쓰러지게 하고 싶은 욕심이 생길 정도였다. 이대훈의 사각미트를 잡은 날이면 가슴팍에 멍이 박혔다. 이대훈의 노력과 성실함에 팬이 될 수밖에 없었다.” 전 국가대표 강화훈련단 박정우 코치(현 국가대표 후보선수단 감독)가 말하는 이대훈이다.
태릉선수촌에 처음 들어간 선수들이 “왜 사람들이 이대훈, 이대훈 하는지 함께 지내보고 알았다”고 말하는 까닭 역시 바로 그 ‘노력’ 때문이었다.
2015년 멕시코시티 그랑프리 파이널 결승전. |
이대훈의 노력에는 끝없는 성장에 대한 자신만의 믿음이 있다.
“정해진 100번의 발차기를 다 차고, 다시 101개를 시작하는 것. 그것이 결국 성장이다. 몸이 안 좋은 날에도 그 몸에 맞춰 훈련 중 극한을 끌어내고, 넘어서야 한다. 몸이 안좋다고 해서 경기를 뛰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키가 크고, 누군가는 탄력이 좋다. 나는 그 어떤 것도 갖고 있지 않다. 내가 갖고 있는 것은 오로지 노력뿐이다. 노력이 없으면, 매일 사점을 넘어 성장하지 못하면 바로 그때가 나의 끝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의 성장은 무한하다. 정말 힘들 때 바로 그때 거기서부터 성장한다. 그리고 그것은 기회다. 그 기회를 손에서 놓지 않으면 더 나은 나를 만들 수 있다.”
훈련이 힘든 때도 있다. 그럴 때면 이대훈은 “아! 더 이상은 못하겠다”고 크게 내뱉고 다시 훈련을 한다. 스스로는 ‘부정의 힘’이라고 말한다. 훈련의 고통이 없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은 못하겠다’는 말로 고통을 다시 이겨내고 한계를 넘어선다.
“생각은 무한하고 자유롭다. 구애받지 않아도 되는 온전히 나만의 것이다. 그 생각을 바탕으로 더 나은 나를 만들기 위해 사점을 넘어서는 것, 그 성장에서 소소한 행복을 느낀다.”
리우올림픽...타제굴과의 결승전 원한다
리우올림픽 남자 –68kg급은 리우올림픽 태권도경기 남녀 전 체급을 통틀어 가장 스타들이 많이 포진한 자타공인 별들의 체급.
이대훈을 비롯해 런던올림픽 남자 –58kg급 금메달리스트 곤잘레스와 같은 체급 동메달리스트 러시아의 알렉세이 데니센코브, 남자 –68kg급 금메달리스트 터키의 세르벳 타제굴, 그리고, 시드 1번을 받은 벨기에의 자우드 아찹, 멕시코의 사울 구티에레즈가 일찌감치 6강 체제를 구축해 그랑프리 대회에서 경쟁을 펼쳐왔다.
2013년 푸에블라 세계선수권 8강전서 스페인의 곤잘레스를 점수차승으로 이긴 후 기뻐하는 장면. |
이 중 이대훈이 가장 원하는 결승전 상대는 터키의 ‘테크니션 황제’ 타제굴이다. 아직 단 한 번도 맞선 경험이 없는 타제굴을 결승 상대로 지목한 이대훈.
“가장 화려한 경기를 결승전서 하고 싶다. 그래서 내가 이기든 지든 전세계 사람들에게 태권도가 얼마나 멋있는 경기인지 보여주고 싶다. 데니센코브나 곤잘레스를 만나면 치고받는 난타전이 벌어질 가능성이 적다. 지든 이기든 기술과 기술이 격돌하는 정말 최고의 경기를 하고 싶다. 지금처럼 준비하면 가장 좋은 경기를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다.”
기사를 마치며...
이미 평준화된 경기력의 세계무대에서도, 불완전한 전자호구의 부침 속에서도, 잦은 경기규칙의 개정 속에서도 노력이라는 진실 하나로 한국 태권도의 자존심을 세운 태권도 선수.
가장 평범한 것을, 가장 질기게 갈고 닦아 천재가 된 태권도 선수.
최선을 다하고, 그리고 경기에서 졌을 때조차 역시 최선을 다한 상대의 승리를 온전히 함께 기뻐해줄 수 있는 태권도 선수가 되길 소망하는 완전체 태권도 선수.
한국 태권도의 자존심 이대훈의 두 번째 올림픽 무대를 기다리며 벌써부터 심장이 뜨겁다.
양택진 기자 winset75@naver.com